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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초콜릿]사랑의 묘약에 대한 비밀...
박종욱의 라틴&스페인 영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관은 현실 도피적이었다. 완전하면서 운명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해도 결국 그러한 운명적인 사랑은 현실적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채 가슴 아픈 추억이 될 뿐이라는 것이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이었다. 쉬운 사랑은 매력이 없었고, 어려울수록 그 실현 가능성에 목을 매곤 했다. 불가능한 사랑의 비극은 뜨거움에 타들어가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죽음으로 초대하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운명과 숙명의 사랑이란 여전히 수많은 선남선녀들에게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매력 있는 모순된 목표가 되기도 한다. 노래 제목처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을 가슴에 안고 귀신이 되어서도 허공을 떠도는 사랑의 이야기들은 지상에서의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에 진력이 날 즈음, 이뤄질 수 없었음에 더욱 애절하고 더욱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온갖 전설들을 만들어 내는 신통함으로 권태기에 접어들거나 완벽한 짝을 만나지 못한 이들을 위로하곤 한다. 사랑의 불꽃으로 몸과 마음이 타버릴 것만 같았던 기억이 운명적인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현실에서는 결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뤄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의 관계는 마음과 정성이 담긴 요리를 통해 힘겨운 단계를 견뎌낼 수 있게 만들었고, 결국 지상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기적을 꽃피워낸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사랑이다. 사랑을 음식으로 전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많은 영화에서 음식과 사랑은 식욕과 성욕으로 비유되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식욕으로서 성욕을 자극하는 매개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아픔과 희망, 그리고 운명과 같은 사랑이 모두 음식을 통해 얘기되기 때문이다.




 멕시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현대 멕시코 소설을 대표하는 인기 대중 작가인 라우라 에스키벨(60)은 원래 영화용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구성과 화면이 적절하지 않다고 퇴짜를 맞아 결국 소설로 먼저 출판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설의 유명세는 연극으로 연결되었고, 마침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남편인 유명 영화감독 알폰소 아라우가 메가폰을 잡았으니, 라우라의 원작은 영화가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 왼편부터 원작 소설 표지, 연극 장면, 영화 포스터 >

특히, 소설에서 활자만으로도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며 놀라울 만큼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었던 라우라는 이번에는 영상으로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게 되었다. 소설이 일 년 열두 달이라는 구성 안에서 특별한 요리를 하나씩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음식에 집중을 하되, 형부의 된 옛 연인과의 금지된 사랑의 애절함, 숨 막히는 숨바꼭질을 강조하고 있다. 극적 구성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으며, 영화의 매력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영화는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슬픔, 기쁨, 사랑, 역겨움 등 모든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다가갈 수 없어도, 음식은 사랑의 묘약이 되어 두 사람을 뜨거운 열락의 기쁨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여주인공 티타의 페드로를 향한 사랑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통해 두 사람의 몸과 마음에 아프로디테의 선물인 사랑의 묘약이 약효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격변하는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명문 가문인 ‘데 라 가르사’ 집안에는 전근대적 권위와 전통이 지배하고 있는데, 특히 집안의 막내딸은 출가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악습이 대표적이었다. 티타는 권위적인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마마 엘레나를 돌봐야 하는 운명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도피처를 부엌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억지와 독선을 참기 힘들 때에 빵이 익는 냄새며, 각종 향신료가 고유의 재료들과 어울리며 만들어 내는 향과 맛의 매력은 티타에게는 해방구였다.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포기한 채 어머니를 모시며 독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부엌은 자유로움을 허락하는 위로의 장소였다. 관습적으로 여성이 노동을 강요당하는 장소였던 부엌은 티타에게 해방의 자유로움이 가득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티타는 가부장제적 권위와 인습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던 전근대 여성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패미니즘이나 해방을 부르짖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개인의 아픔과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아직도 소녀이던 그녀에게 청년 페드로가 들어왔다. 그 또한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그 순간 둘은 홀린 듯 서로의 존재에 강하게 끌리기 시작했다.




 청년 페드로가 정식으로 청혼을 했으나, 마마 엘레나는 막내딸은 자신을 돌봐야 하는 운명이며, 대신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할 것을 제안한다. 폭력적인 관습을 고집하는 마마 엘레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티타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도 차선책은 되겠다는 페드로의 결단으로 티타와 페드로는 형부와 처제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가 되고 만다. 스페인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네 명의 자매들과 차례로 관계를 맺었던 이야기나 한국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예비 처형의 공허한 마음을 엉뚱하게 육체적인 사랑으로 어루만졌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허용하는 주제이리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단순하게 처제와 형부의 불륜이나 로맨스를 가장한 모험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숙명적인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이기 때문이다. 페드로는 티타의 곁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티타는 페드로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티타가 주방을 맡은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라는 핑계로 페드로는 아내와 장모가 보는 앞에서 티타에게 마음이 담긴 꽃을 건넨다. 몇 개월씩 잠자리를 하지 않던 아내와 억지로 뒤늦은 첫날밤을 보내면서까지 티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페드로의 마음 속 프로포즈였다. 임신한 아내는 물론이고, 폭력적으로 권위적인 장모의 견제가 더욱 심해졌음은 물론이다. 버려야만 했던 장미는 가시로 상처를 주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티타는 장미 꽃잎으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 마음에 억눌려 있던 사랑과 열정을 일깨운다. 근엄하기만 하던 어머니, 마마 엘레나는 큰 딸 헤르투르디스의 생부 사진을 붙들고 묻어두었던 낭만과 열정에 빠져들었고, 헤르투르디스는 사타구니 사이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엇인가의 힘을 견디기 위해 샤워도 해보지만, 결국 달아오른 몸에 끼얹어진 물이 향기가 되어 수 백리 멀리에서 전투를 치르던 혁명군 후안 알레한드레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후안은 홀린 듯 장미향을 찾아 말을 달렸고, 목조 샤워 부스를 결국 태워버린 헤르투르디스는 주체하기 어려운 욕망을 못이겨 자신을 찾아오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초원을 달리기 시작한다. 헤르투르디스를 발견한 후안은 나신의 그녀를 당겨 올려 자신과 마주하여 더욱 강하게 말을 달린다. 아마도, 애마부인 정도로 익숙했던 국내 관객들은 낯설고 민망하면서도, 시선이 가는 색다른 경험을 했을 수도 있으리라.








 티타의 요리는 맛과 향을 넘어서, 테라피의 효능을 지닌다. 초자아(Super Ego)에 의해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슬픔, 기쁨, 환희, 욕망을 분출하여, 진정한 자아(Ego)가 원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해방시키는 치료적 효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요리를 하는 티타에게는 특별한 레시피가 없다. 놀라운 요리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그저,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마음을 담아 정성을 들이는 그녀의 요리 장면을 보면, 최근 요리와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 소설의 매력이 전혀 허구가 아님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러한 그녀도 계속되는 역경과 방해를 이겨내기는 힘에 부친다. 무엇보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초자아로서 군림하는 마마 엘레나의 존재는 최대의 난관이다. 하지만, 아무도 덫에 걸린 사냥감을 구출해주지는 않는다. 스스로가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가 해방군이 되어야 하는 인식이다. 혼령이 되어서도 자신을 지배하는 마마 엘레나에게 티타가 소리쳐 하는 말이다. “이건 내 삶이고, 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어요!”. 자유롭게 살 권리는 스스로가 투쟁하는 사람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다. 친절한 존 브라운 박사도 자신을 사랑하는 페드로도 티타의 아픔을 달래주고, 역경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돌봐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티타가 요리를 하면서 발견한 재능은 스스로의 마음에 전념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진할 수 있는 집중력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견제와 통제를 의식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소리를 실천으로 옮기려는 그녀의 의식은 이미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종교이며 삶의 가장 진실한 의식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드디어 둘만 남게 된 두 사람이 방안 가득 촛불을 밝히고, 도둑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의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속박도, 허위의식도, 집착도 없는 상황에서 서로만을 바라보는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은 욕망의 절절한 표현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소중한 것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의례로 보이기도 한다.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 페드로와 운명을 함께 하려는 티타는 자신이 홀로 아픈 마음을 달래며 뜨개질을 해서 만들었던 수백, 수천 미터의 긴 망토로 두 사람의 몸을 감싼 채 죽음을 선택한다. 오랫동안 절제하고 참아왔던 자신의 성냥에 불을 붙인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원제인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초콜릿을 끓이기 위한 물이다. 영화에서는 넘치지 않은 채 끓여야 하는 상황으로서, 티타가 지속해야만 했던 내면의 욕망의 불길을 절제해야만 하는 간절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박종욱
2010-07-27 박종욱 부산외국어대 HK연구교수
MOVIE INFO
 
 
무적자
| 한국 | 121분
감독 송해성
주진모(김혁 역), 송승헌(이영춘 역), 김강우(김철 역), 조한선(정태민 역) 등
등급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