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끼>(감독 강우석)는 올 여름 최고 화제작이다. 윤태호 작가의 유명 원작만화, 흥행감독 강우석의 첫 스릴러 도전, 배우들의 고른 연기력 등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만화 <이끼>는 포털에 연재되며 총 360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다양하고 생생한 캐릭터 묘사, 꽉 짜인 스토리, 숨막히는 전개로 사랑받았다. 손꼽히는 흥행감독인 강우석이 처음 스릴러에 도전한 것도 주목거리다. 강우석은 그동안 동시대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문제의식을 표면화했다. 코믹 요소를 양념으로 사용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었다. 반면 만화 <이끼>는 마이너적인 감수성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인간의 감춰진 내면과 그로 인한 비극을 피밀하게 그린다. 강우석과 <이끼>의 만남은 그래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영화는 원작만화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유해국(박해일)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산골로 내려온다. 10여 가구가 사는 그 마을은 이장인 천용덕(정재영)의 성이다. 그의 집은 마을 가장 높은 곳에 마치 일본 영주의 성처럼 우뚝 솟아 있다.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김덕천(유해진), 전석만(김상호), 하성규(김준배)는 천용덕의 수족이다. 그런데 상주를 맞는 분위기가 이상하다.
마을 사람들은 유해국을 자꾸 밀어낸다. 빨리 서울로 돌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유해국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당연히 갈등이 발생한다.
<이끼>는 표면적으로 유해국과 천용덕의 갈등이 중심축을 이룬다. 여기에 유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허준호)의 죽음과 기도원 살인사건이 음울한 배경으로 깔린다. 인간의 동물적인 탐욕과 종교적 이상의 대립이다. 이영지(유선)의 트라우마도 중요한 복선이 된다. 결말은 원작만화와 많이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플롯이기도 하다. 갈등의 원인, 비밀의 핵심을 초반에 다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강우석의 새로운 도전은, 일단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끼>는 스릴러물로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을 애써 집어넣지 않고도,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흡인력을 갖는다. 단지 원작의 힘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캐릭터와 서사를 장악하고 끝까지 이끌어가는 강우석의 연출력은 분명 돋보인다. 여기에 장기인 코믹함을 솜씨있게 버무려 넣었다. `코믹 스릴러'라는 진기한 장르를 선보였다. 긴장감과 웃음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무리없이 섞여 있다. 스릴러 마니아들은 실망하겠지만, 대중적인 스릴러영화로서 커다란 흠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여럿 눈에 띈다. 표면적으로 속도의 문제가 불거진다. <이끼>의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인다. 사건 전개도 느리다. 속도감을 중시하는 많은 스릴러 영화와 차별화된다. 관객들이 낯설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신 각 인물을 일일이 조명한다. 이는 이야기 전개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끼>는 두괄식이다. 영화 초반에 사건의 핵심을 보여준다. 스릴러에서 결말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모험이다. 강우석은 마지막에 원작과 다른 반전을 마련해 놓았다는 자신감으로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조였다가 중반에 풀어주고, 마지막에 다시 조이는 힘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역동성과 리듬감이 사라진 점은 짚어야 할 대목이다. 이야기가 넓게 퍼져 전개되는 탓이다. 이는 속도가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다. 나아가 캐릭터의 깊이의 문제다. 많은 스릴러 영화는 깔때기 구조다. <이끼>는 그 반대다. 초반에 결말을 보여주고, 나중에 각각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다소 힘이 빠진다. 산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압축돼 있지도 않다. 유해국과 조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처럼, 비슷한 얘기가 비슷한 템포로 전개되다보니 단조롭게 느껴진다. 관객들은, 특히 원작만화를 읽지 않은 관객들은, 제3의 결말을 기대한다. 기도원 살인사건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다. 따라서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화는 이 기대를 배반한다. 일부 관객들과 틈이 생기는 이유다. 이영지의 반전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등 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인간의 탐욕과 종교적 이상의 싸움인지(천용덕vs유목형),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의 첨예한 갈등인지(천용덕vs유해국) 모호하다. 동물적 탐욕과 순수한 이상, 진실과 은폐…. <이끼>에서 두 개의 테마는 수레의 바퀴와 같다. 하지만 두 갈등 구조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마무리가 헐겁다. 스릴러로서는 적지 않은 약점이다. 유목형의 캐릭터가 희미한 탓이 크다. 반면 천용덕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들은 지금보다 축소돼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작에 대한, 인물들에 대한 강우석의 새로운 해석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이끼>는 강우석의 노련한 연출력을 잘 보여준다. 스릴러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강우석의 다른 영화를 뛰어넘었거나 혹은 최근 유행인 다른 스릴러물과 비교해서 수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