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되도록 현재 상영 중인 영화들을 모티브로 칼럼을 쓰는 것을 나름대로 원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음 학기 대학원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비만에 대한 뉴스를 찾다 보니 딱 1년 전 뉴스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울한 대한민국 달달구리 열풍!’이라는 타이틀이었습니다.
'달달구리'란 단맛이 나는 먹을거리를 통칭하는 신조어로 작년부터 경기 불황으로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 탓인지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로서 던킨 도너츠가 매년 발표하는 '인기순위 톱10' 조사에 따르면 2009년 당시 가장 많이 팔린 도너츠는 '스트로베리필드'로 딸기잼으로 속을 채우고 하얀 슈거 파우더로 뒤덮은 강한 단 맛의 도너츠인데 2008년에 비해 10%나 판매량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스타벅스 역시 바닐라, 카라멜 시럽을 추가 주문하는 고객이 2008년에 비해 같은 기간보다 50%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배우 한 명과 영화 한 편이 있었습니다. ‘달렌 케이츠 (Darlene Cates)’라는 여배우를 아시는 분은 별로 없으시겠지만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멋진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은 많으리라 믿습니다.
하긴 <길버트 그레이프>가 1994년 영화이니까요.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잭 스패로우 선장으로 유명한 조니 뎁의 꽃미남 시절을 보시고 싶으신 분은 꼭 보십시오. 그리고 10대 정신박약아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력에 비해서 캐스팅 운은 지독하게 없었던 젊은 줄리엣 루이스까지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워낙 옛날 영화이기 때문에 간단한 줄거리만 읊어 드린다면..........
미국 아이오아 주에 있는 천명 남짓 되는 작은 마을에서 길버트 그레이프(Gilbert Grape: 조니 뎁)는 식료품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항상 그의 가족과 작은 마을에서 탈출하고 싶어 합니다. 남편이 자살한 이후 몸무게가 너무 늘어서 소파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는 뚱뚱한 어머니(달렌 캐이츠), 틈만 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저능아 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34살의 누나, 예쁘긴 하지만 항상 불만에 쌓여 있는 여동생 엘렌 등은 항상 그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다.
길버트는 작은 마을에서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 속에서 동네의 카버 부인과 불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때 우연히 고장 난 자동차 때문에 이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된 소녀 베키(줄리엣 루이스)에게 끌리게 되고 둘은 서로의 내면을 아껴 주는 순수한 사랑을 하게 된다.
저능아 어니의 18번째 생일날, 가족들은 그동안 쌓였던 갈등을 푸는 계기가 된다. 길버트는 떠나는 베키를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주고, 생일을 치르고 난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후 항상 머물렀던 1층 소파를 벗어나 2층 침대에 가서 누운 후 돌아가신다. 남은 가족들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놀림감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집을 태워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 에이미와 동생 엘렌은 각자의 길을 찾아 새로운 곳을 떠나고, 길버트도 어니와 함께 베키의 도움으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떠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달렌 케이츠 (Darlene Cates)’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길버트의 어머니로 출연하였습니다. 실제 체중도 120kg이 훨씬 넘고, 영화에서는 거의 200kg에 달하는 체중으로 등장합니다. 1층 소파에서 모든 생활을 보내던 어머니가 스스로 2층으로 올라가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영화의 대전환이 일어나지만, 도대체 이 어머니는 왜 이렇게 체중이 늘었을까요?
내용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편의 자살’이라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의해 체중이 늘었습니다. 단순히 영화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실제 비만 자체가 스트레스와 강력한 연관이 있고, 특히 우울증과 비만은 공통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가설이 분자 정신의학 (Molecular Psychiatry)에서 다뤄질 정도니까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여성은 허벅지보다 복부 지방이 더 많이 늘어난다는 예일대학교의 연구, 폭식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식이요법보다 스트레스 대처법에 대한 교육이 더 체중을 잘 줄인다는 뉴욕 연례 과학회 발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여성의 식사량이 훨씬 많다는 정신내분비학 연구 발표 등 스트레스와 비만의 연관성을 증명한 연구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스트레스란 정신적, 육체적 균형상태가 외적 또는 내적 자극에 의해서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균형상태’라는 것입니다. 평화 시에는 전쟁이 스트레스겠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갑자기 다가온 평화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뭔가 자신의 힘든 상태를 달래줄 것이 필요합니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사람은 아주 흔합니다.
특히 아주 ‘단’ 음식, 속칭 ‘달달구리’로 달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불황’이란 것은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이럴 때 단맛이 입맛을 사로잡는 이유에 대해서 프린스턴대학교의 바트 회벨 (Bart Hoebel) 교수는 쥐 실험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탕물을 먹은 쥐들의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도파민은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중독성 물질, 쉽게 설명하면 마약 등에 의해서 많이 분비되는 뇌 속의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도파민이 주는 쾌감 때문에 마약을 끊지 못하는 중독 상태로 빠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탕 역시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에 한번 단것에 ‘꽂히게’ 되면 단맛에 ‘중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중독’이 된다는 것은 다음에는 더 큰 자극을 받아야 전보다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정도의 쾌감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점점 더 큰 자극, 더 심하게 단 음식을 찾게 됩니다. 결국 그러다 보면 체중이 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설탕도 마약처럼 중독’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