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The Proposition >을 연출했던 존 힐코트(John Hillcoat) 감독은 <더 로드>의 흑백으로 가득한 세상풍경을 화면에 담기 위해 겨울 동안 피츠버그에서 촬영했습니다.
소설에 담긴 풍경과 작가 매카시 특유의 문체가 주는 느낌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길지 고민하는 힐코트 감독에게 매카시가,
<소설은 소설, 영화는 영화일 뿐>
이라고 말해주어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 로드>에는 어떻게 해서 지구에 대재앙이 왔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매카시는 말합니다.
매카시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 이유를 묻지만, 내겐 답이 없습니다.
산타페 인스티튜트의 몇몇 과학자는
영화에서는 마치 유성충돌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건 무엇이든 가능해요. 화산폭발일 수도 있고 핵전쟁도 가능하죠.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거죠.
(사진: 코맥 매카시, 존 힐코트)
<더 로드>는 힐코트 감독이 호주출신의 미술감독 Chris Kennedy와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한 그의 첫 번 째 미국영화입니다. 그는 소설 <더 로드>를 읽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힐코트 감독
사실 이 모든 건 몇 년전 프로듀서 Nick Wechsler에게
코맥 매카시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이야기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6월 초 쯤이던가, Nick이 아직 출판되지 않은 <더 로드>의 원고를 내게 보냈어요.
나는 런던을 출발한 기차에서부터 읽기시작해서 Brighton에서 걸으면서 끝이 났습니다.
읽는 동안 내 등 뒤에선 파도가 몰아치며 두들겨대고
바람이 울부짖어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몇 페이지는 마치 감성의 쓰나미처럼 날 강하게 두들겼어요.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내 아들 Louie를 힘껏,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힐코트 감독은 <더 로드>를 영화로 만드는 일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속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그 감정의 깊이를 어떻게 재창조할 것이며, 어떻게 책의 명성을 짊어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의 가장 커다란 고민은 여덟 혹은 아홉 살 정도의 아들 역할을 할 어린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었지만 다른 측면으론 하나의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거기다가 코엔형제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성공을 거두자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만 갔습니다.
힐코트 감독은 2006년 7월 6일, 자신의 전작인 을 보여주기 위해 매카시를 초대했습니다. 매카시는 그 영화를 무척 좋아했고, 매카시 예찬자인 힐코트 감독이 매카시의 소설 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영화라는 것을 매카시가 인증(?)해주게 됩니다. 힐코트 감독과 프로듀서는 <더 로드>의 판권을 얻게 되었죠.
할리우드의 유명 작가들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과 <더 로드>에 대해 토론해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던 힐코트 감독은 각색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던 Joe Penhall에게 각색 작업을 맡겼습니다.
힐코트 감독은 Joe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힐코트 감독
Joe는 톡톡 튀는 시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습니다.
그는 작품 속에 있는 대사들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추길 원했어요.
그리고 이야기와 인물들에 있어 원작 속에 있는 핵심을 뽑아내길 원했습니다.
(주인공들과 함께, 가운데 하얀 셔츠 입은 사람이 시나리오 각색을 맡은 Joe Penhall )
2007년 6월 Joe는 초고를 완성합니다. Joe와 함께 매주 며칠씩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힐코트 감독은 캐스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원작이 워낙 어두운 주제인지라 아역배우가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었고, 그럴 수만 있다면 소년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길 바랐습니다.
(나중에 그는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그것이 공포영화인지 모르고 연기했던 재능 있는 어린 배우를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감정선과 주제에 대한 완벽한 몰입, 이해가 꼭 필요한 요소이긴 했죠.
재난의 원인이 무엇이든, 소설의 배경이 재난 이후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힐코트 감독과 미술감독 크리스는 다양한 사건들을 담은 사진첩을 만들었습니다. 감독은 <더 로드>가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공황시기를 찍었던 사진가 Dorothea Lange의 사진들, 살아남으려 서부로 가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분투했던 보통 사람들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힐코트 감독은 극중 인물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얼굴을 가진 배우가 Viggo Mortensen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사 없이도 투쟁을 비춰낼 수 있는 배우고, 게다가 힐코트 감독은 결코 물러날 줄 모르는 배우를 원했거든요.
하지만 Viggo로부터 답을 얻기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영화촬영과 인터뷰로 인해 탈진하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오랜 구애 끝에 힐코트 감독 일행은 그를 합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Viggo는 <더 로드>에서 그의 연기에 당시 극도로 피곤했던 상태를 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힐코트 감독은 회상합니다.
같은 해 9월 힐코트 감독 팀은 일종의 온라인 로케이션 링크를 구축합니다. 사람들은 촬영 장소후보가 될 만한 사진을 찾아서 웹 링크에 올렸습니다. 크리스는 호주에서, 힐코트 감독은 영국에서 이 링크를 통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메모를 덧붙여 업데이트 하는 방식으로 작업해갔습니다. 이 과정은 몇 달 동안 계속됐습니다.

(힐코트 감독고 미술감독 Chirs)
힐코트 감독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로 Google Earth를 통해
자신이 점찍은 어두운 지역을 확대해가며
미국 전역을 살피던 Chris가 Pennsylvania에 있는
Nemacolin 근처 광산 왼편 너머에서
재를 쌓아둔 커다란 폐기물 무더기들이 있는 듯한 지역을 발견했어요.
우리는 그 재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무척이나 추웠죠.
우리는 유리창이 검게 칠해진 밴을 렌트해서 타고 갔는데 차에서 나올 때 우리는
머리와 목, 어깨 위까지 덮는 등산용 모자인 발라클라바를 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두세대의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 올라왔는데
거기엔 무장 경비원들이 타고 있었어요.
그제야 우리는 그곳 맞은편에 엄청나게 커다란 교도소가 있다는 걸 알았죠.
우리 로케이션 매니저가 그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서야
결국 우린 우리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재 무덤에서 오른쪽 아랫길이 교도소 운동장으로 통해있었는데
경비원들은 우리가 탈옥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겁니다.
Tip : 영화 <더 로드>에 대한 이야기와 자료가 좀 많더군요. 가능하면 빨리 다음 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후끈! 합니다.아자 아자!!! 8강!
Be Continued...